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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이 지니는 항구적인 생명력에 대한 믿음 - 고은의 『만인보』에 대하여
인간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이미 시작된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담론의 형성이나 그것의 예전 화두는 더 이상 면벽의 정점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그 자리에 세계를 하나로 묶는다는 자본의 논리가 다가올 시대적 명제로 자리 잡혀갈 아주 볼 상 사나운 광경이 우리 눈앞에, 피부에 우

선 닿는 오늘을 누구나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은 지난 세기를 지탱해 온 과학적 합리성에 강한 의구심을 내보이고 더 나아가 불온한 이성의 힘에 더 이상 인류를 맡길 수 없다고까지 한다. 그것의 물결이 심상치 않다. 그런 파고의 틈을 비집고 드는 뿌리 없는 문화의 범람은 진정한 삶의 가치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심지어 오도하여 다가올 21세기를 그야말로 불안의 도가니로 여기게 한다. 눈뜨고 나면 닥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투명한 현실로, 또 첨단 문명의 거듭남에 발걸음 가누지 못하고 뒤쳐진 실존들은 정신의 가늠자를 바로 잡지 못해 불우한 삶을 다시 번복할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거기에 '나'가 있고 '너'가 있어 우리 사는 시대가 된다. 그야말로 우의 역사가 그렇게 씌어진다.시대의 축적은 역사다. 역사는 '나'와 '너'라는 살과 '우리'라는 축이 함께 굴리는 수레바퀴다. 그러기에 역사는 인간과 끊임없이 길항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너.나 없는 우리가 언어도단인 것처럼 우리 없는 사회와 역사는 언어도단을 넘어 참다운 어떤 의미조차 지닐 수 없음 또한 당연하다. 아울러 우리의 삶과 그것을 지탱하는(선도하거나 보충하는) 무수한 고리는 인간 선(善) 심연의 근저로부터 자생하는, 다시 말해 문학의 기능을 생각하게끔 한다. 문학을 아리스토텔레스 적으로 돌려 시라 하자. 시의 기능이란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하게 그 실체의 가지를 뻗을 수 있겠지만 모든 것 차치해두고 삶이나 세계(사회), 역사에 수렴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테다. 그러할 때 삶, 역사, 세계의 주체로서 우리에게 새롭게 생각해야할 의무를 시가 부여한다면 옹색한 시 독자의 망상일까. 아니다 우선적이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가슴밭을 기름지게 일구는 것은 시외에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시야말로 가장 집약된 언어로 삶 구조를 파헤쳐 적나라히 보여준 것 아닌가. 시어와 시 구문 사이, 행과 행 사이 암묵의 울림이 문제의 본질을 파헤쳐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의 여유를 갖게 하는데 그 또한 시 읽기의 매력 아니었던가. 정신의 가늠자가 과녁의 초점을 명료히 밝히지 못하는 이 시대에 시(시인됨)의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아니 됨을 새삼 강조한다. 요즘, 시류에 얹혀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선천적으로 성량이 풍부한 사람이 남의 눈에 잘 뜨이고 잘 살아가는 삶처럼 타의 추종을 사는 경우가 더러 있음을 보게 된다. 이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심이 따로 없고, 많은 사람들이 우선의 한끼니 주린 창자의 쓰라림 때문에 오도된 가치에서 난 신념과 주장을 펴며 내일을 준비하려 한다. 진정 불온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테다. 어둠의 역사에서 우리들의 심미안이 고양이 눈처럼 모로 섰을 때는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웅크려 있었을 뿐이다. 우리의 선(先) 인류 몇몇은 지혜롭게도 그것을 잘 찾아냈고, 지금의 우리를 이마만큼이나 존재하도록 했던 것이다. 필자는, 오직 사람만이 희망으로 삼는 시인 고은을, 아니 고은의 방법을 우리가 찾아야할 희망의 뱃고동이라 여긴다. 그 뱃고동의 울림 끝에는 내일의 태양이 밝은 빛으로 솟아나리라.시뿐 아니라 소설, 평론, 에세이 등 전 장르에 두루 걸쳐 다양한 문학 활동을 해온 고은의 문학은 분량도 많고 그 경향도 종잡을 수 없어 (솔직히)누구 하나 그 특성을 규정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몇몇의 선학들이 그의 시적 행보를 민족.민중시의 계열에 포함시키는 것은 필자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수긍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앞서의 이런 경향과는 달리 전작시 『만인보』에서 시인은 시대의 선봉에 선 투사로서가 아니라 민족을 아우르는 포근하고 섬세한 가슴으로 포용력을 내 보이고 있다. 지나친 가성이나 이념의 추구보다도 대승적이고 원초적인 넉넉함으로 우리 민족의 삶 자체를 그려 내보이고 있거니와 민족에 대한 시리도록 산뜻한 애정이 내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친지 친우들의 살갗스런 입담으로 살아나 오랜 기억으로만 남아도는 사랑방 화롯가의 따뜻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부언하건대 전작시 『만인보』는 민중의식만을 지향하는 작품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단단한 강건성이나 가진 자 혹은 지배계층에 대한 공격성이나 노여움 대신 인간 본연의 체취가 물씬 베어 있다. 이런 시인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문학이나 예술이 현실에 직접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으나 간접적이고 반대의 방법으로 현실에의 기여를 꽤할 수도 있음을 본다. 아울러 『만인보』에서 보여주는 치열한 정신은, 삶이란 이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긍정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삶의 여러 겹을 낱낱이 인식하려는 예인의 천착성에 도달하려는 과정이라는 평가 역시 우선적으로 내릴만 하겠다.『만인보』는 시인이 내보이는 삶에 대한 경도이며 인간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의 산물이며 민족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우리 조상들과 이웃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여과 없이 제시한다. <이 땅의 삼천리 강산 위에 내가 살고 있음이 엄연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인으로 사는 일을 다 할 터이다. 시가 죽으면 진실이 죽는다(1권, 「작자의 말」 중에서)>는 시인의 시인됨에서도 천명하듯이 민족의 다양한 삶과 애환을 그리며 한민족에 대한 진실된 애정을 말하고 있다. 『만인보』 1권 「작자의 말」에서 계속하는 다음의 내용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 전작시편 『만인보』는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다. 나의 만남은 전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공적인 것이다. 이 공공성이야말로 개인적인 망각과 방임으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삶 자체로서의 진실의 기념으로 그 일회성을 막아야 한다. 하잘 것 없는 만남 하나에도 거기에는 역사의 불가결성이 있다.
-『만인보 1권』, 「작자의 말」 부분-
이처럼 이 전작시 형태의 작업은 <이 땅의 광막한 역사와 산야에 잠들어 있는 세상의 삶을 사람 하나 하나를 통해 현재화(1권 4 p)>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며 소박한 만남에 대한 의미 부여다. 인간의 삶이란 태어나면서부터가 만남이며 세상의 하나부터 열을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다. 그로서 세상의 한 구성원이 되며 각 구성원은 인연의 고리에 따라 삶의 이정표가 세워지고, 이는 실개천으로 시작하여 역사의 도도한 줄기로 하나의 바다로 합일되어, 그야말로 역사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우선적인 전제로써 사람끼리의 만남에서 확충되는 의미가 생성될 것이며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1권, 「서시」)>라는 작가의 신념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개개의 개체가 집결되어 민족성이라는 원대한 세계로 편입되고 독특한 인자의 특성을 획득해 나가는 터, 개체의 삶을 세세하게 그려 내보이는 작업은 그야말로 민족적 영혼의 지형도를 구축해 가는 작업에 다름 아닐 것이다. 『만인보』의 시편에 나타나는 우리의 고향에 뿌리를 둔 개인들의 고유한 삶의 모습은 민족적 정체성이 흔들려, 우리의 뿌리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는 오늘에 민족적 삶의 원형을 탐색하여 민족적 생명력의 축과 궤를 겯고 틀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이 아직은 진행형인 만큼 계속되는 갑박을론이 있을 것이고, 작가의 <인寬@? 그린다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닐뿐더러 아주 난처하기까지 하다(13권, 6 p)>는 헤아릴 만한 메타宕? 있거니와, 필자의 개진하는 글은 소견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열어두겠다.
『만인보』의 개괄적 이해를 위하여 『만인보』는 1986년 초겨울 전작시 형태로 1.2.3권이 간행되었고 이후 3백여 시편을 세 권의 단행본으로 나누어 묶어 발표되어 오고 있다. 현재까지 총 15권이 간행되어 나옴으로써 다루어진 인물

만도 천의 숫자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전 30여 권의 분량으로 총 3천여 편을 낼 계획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 많은 인물들이 우리에게 소개되어질 것이다. 시인의 장편 서사시 『백두산』이 개인의 구체적인 삶보다 역사 의식적 기록에 무게를 두고 있는 통시적 맥락에서 총체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만인보』는 <만인의 삶에 대한 시적 기록>이란 뜻으로 이념적 역사성을 개개인의 자잘한 삶 속에서 길어 올리는 공시적 작업으로 총체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본 논고에서 필자는 편의상 3권씩 묶어, 즉 1.2.3권을 1집, 4.5.6권을 2집, 7.8.9권을 3집, 10.11.12권을 4집, 13.14.15권을 5집이라 칭하겠다. 시인 역시 세 권을 주기로 하여 「작가의 말」을 통해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계획을 피력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무리가 없을 성싶다.제1집과 제2집은 <우선 내 어린 시절의 기초 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1권 4 p)>고 시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시인 자신의 고향 언덕 고향 사람들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어 제3집에 해당하는 7권부터 9권에서는 <고향의 산하를 벗어나 1950년대의 편력을 통해 만나고 스쳐간 사람들과 관련된 사회적 명멸을 노래(7권 3 p)>

하고 있다. 계속해서 제4집으로 분류되는 10권부터 12권까지는 <70년대의 임의적인 부분(10권 4 p)>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13권부터 현재까지 출간된 15권까지는 <70년대 사람들>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데, 이는 18권까지로 이어질 계획이란다.가장 눈여겨보아지는 것은, 『만인보』에는 영웅 중심의 일방적인 역사 해석 속에 매몰되어온 개인들의 모습, 고쳐 말해 민중의 모습이 다양한 색채로 의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 어느 누구라도 하나같이 그 나름의 이야기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혹은 살아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수많은 타인의 생을 내가 직접 산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이란 생의 반경이 넓어지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나 스스로 이야기의 전수자가 되고 싶은 창조적 충동까지를 포함한다면 올바른 텍스트 읽기의 실패는 아닐까하면서도 기우라 여긴다. 까닭인즉슨 시인의 탁 트인 언어구사 능력과 기억 속에서 전수된 과거의 경험들과 들어온 얘기들을 일관되게 재구성하는 탁월한 상상력과 이야기를 부리는 능숙한 이야기꾼의 기질과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한데서 찾을 만 하겠다. 문학이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를 표현해내야 한다

는, 어느 시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다는 문학개론식 답안을 말해 무엇하겠는가마는 고은의 『만인보』에서의 경험은 특별한 구석이 있다. 이를 내 나름으로 굳이 이름 붙이자면 삶의 구체성이라 하겠다. 『만인보』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는 공통된 감정에서 시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현실에서 부딪혀 왔던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 최대한 감정의 개입을 배제하는 시인의 태도가 또한 일관성을 갖는다. 매 한 편 한 편에서 깊은 서사가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문학이란 이 땅에서, 또는 이 시대에 있어 무엇인가, 문학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4권 3 p)>라는 물음에 대해 성실하게 답하려는 태도가 요즈음 우리 창작 문학의 가장자리에조차 발 딛고 서기 무색해진 분위기를 이루고 있음을 생각해볼 때 『만인보』의 시편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노래하는 목젖이 아직 메말라 있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인보』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어 인물 백과사전을 방불케 한다. 코흘리개 시절 가갸거겨를 배워준, 어린 시인에게 불빛이었다던 「머슴 대길이」의 의로운 모습이 있는가 하면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던 「삼만이 할머니」가 등장하고 팔 다리 잘려 나가고 죽어서까지 수난 당하며 올곧은 애국심을 보여준 「내시 처선」의 울부짖음이 우리의 의식에 또롯이 각인되며,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배고픔 속에서 「엿장수」의 가윗소리가 희망의 전주처럼 되살아난다. 조무래기들 사이에 까닭 없는 미움을 받아야만 했던 아이 <사부로>의 일본 제국주의 치하 민심이 들려오고 갑오년의 난리가 6.25의 상처로 이어지는 「달밤」의 원한 시린 달이 떠있는가 하면 <미제 방죽> <동고티> <옥정골>의 고향산천을 뛰어 노니는 유년 시절이 귀 닳은 흑백사진처럼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한 줌도 안되는 양반 노릇 그만두고/새 세상 하나 열 줄 몰랐다/……/홀로 인자한(2권, 「황희」)> 황희 정승이 새로운 시각에서 그려지고 <백성의 반봉건과/ 양반의 위정 척사가 맞서기(2권 「김백선」)>를 선봉에 섰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의병이 있고 어용노조 사내들로부터 똥물을 끼얹어 뒤집어쓴 채 서럽도록 어머니를 불러대는 근대화의 실질적 화신이자 희생양이었던 여공(15권 「동일방직 노동자 김옥순」)의 울부짖음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정 많은 이웃의 모습과 배고픈 고통과 대물림되는 가난의 세월에도 넉넉한 웃음을 베어 물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뻔뻔스럽고도 밉살맞은 악인의 호의호식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그렇다. 『만인보』의 시편에는 다양한 삶의 정황들이 묘사되고 있어서 흡사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민담의 실체를 보고 있는 듯도 하다. 일정한 가락의 호흡들을 정수리에 수혈하듯 읽다보면 삶이란 한 줄기 빛으로 태어나 스펙트럼을 통과한 갖가지 빛들의 파장 속으로 편입된 듯한 幻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여기서(일면, 리얼리티의 정수를 맛보게 해주는 『만인보』의 시편에 반감되는 말과는 별개의 것으로 사용됨을 밝힌다) 幻이라 한 까닭은 개개의 삶 모습들이 역사적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이 개개인의 삶에 가하는 고통의 구체적인 고양태로 빚어지고 있어 차라리 幻이었으면 하는 심정에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참담한 비극의 서사같은 가난과 고통 속을 살아가는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양태를 생생하게 구현, 제시하는 행간에서 굳이 목청 높여 앞세우지 않더라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반성해야 하는 당시의 사회 모순을 독자들이 나름대로 인식하도록 컨텍스트화된 교훈을 주고 있는, 서정과 서사가 보기 드문 조화를 이룬 작품임을 말이다. 이 점이 시인의 많은 여타 작품들과 다른 점이라면 크게 다른 특징이다. 한 시대의 왜곡된 실상은 인간의 삶의 양식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됨을 우리는 말 안해도 안다. 오늘의 문학 또한 이와 같은 사정에서 예외일 수 없음이 내일의 문학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테다.
민중의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 『보맛觀륫? 제1집, 제2집에서 가장 빈번하고 실감 있는 묘사로 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주린 고통이다. 따라서 당시 굽이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민중의 배고픔은 고통의 다름 아니었다.
㈎씨앗망태에 씨앗 담을 날 없고 씨앗망태 삭아버리고 용두레에 물 담을 날 없고 용두레 삭아버리고 방 웃목에 나락 가마니 기대어 둘 날 없으니 빈 가마니에 바람만 꺼져버렸다 조상도 물 말은 밥 떠야 하는데 물 말은 밥 없으니 삭아버린다 제석님도 칠성님도 삭아버린다 제삿날 그냥 지나가는 옥정골 고광래네 집 마당 하나 잘 쓸어두어 적적하구나
-3권, 「삼 년 가물」 전문-
㈏방 한 칸이래야 돼지 울만 하지 거기에 여섯 식구 자고 윗방 용두레만한 데 세 식구 오그라들어 자는데 언제나 시끌덤벙한 집 걸핏하면 식구끼리 욕지거리 튀어나오는 집 오사육시럴 오사육시럴 그러나 그 아홉 식구 굶으면 첫째 말이 없어진다 그 시끌덤벙한 말 다 없어진다 멍하니 초저녁 앞산에 무슨 둠벙 있다고 바라본다 말 없음이여 배고파 말 없음이여
-2권, 「고행덕이네 집」 부분-
이처럼 가난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시인의 주관적 개입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인물들의 삶의 잔상을 무관심하게 열거해 놓은 것은 더욱 아니다. 시인의 민중에 대한 애정이 표나지 않게 깊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두 편의 인용시, 전문에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빈곤의 처참함은 눈물샘 자극하기를 훨씬 넘어섰다. 인용시 (가)의 경우, 차라리 조상님 제삿날에 물 말은 밥조차 차려 내지 못한 마음을 마당이나마 잘 쓸어두는 것으로 고통이 <적적>함으로 적절히 승화되어 그려진다. (나)를 더불어 살펴보면, 배가 고파 말이 없다니(!) 이 얼마나 참담한 현실의 쓰라림인가. 정말 그러했을까라는 의구심보다 고개가 절로 수그려진다. 이처럼 시인은 민중의 배고픔을 과장됨 없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의 삶 하나 하나를 시작의 경직성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위험성을 잘 극복해내 적나라히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시인 자신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살아간 삶을 활자로 조립해 내거나 머리로 상상하여 얻어낸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그 삶을 살았거나, 얼마간 옆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왔기에 가능할 부분이다. 이렇듯 가난의 고통을 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스라한 우리의 서정 그려내기를 잊지 않고 있으며, 이는 웃음과 해학을 잃지 않고 사는 여유롭고 지혜로움의 삶 자세로 그려진다. 지난한 삶의 파란 가운데서도 자생적으로 성장한 민족적 삶이 지니는 강인한 힘이 바로 이것일진데, 그의 근간은 넉넉하고 밝은 정서로 잘 환치되어 빚어지고 있다. 인용시를 함께 살펴보자.
㈐용둔리 시악시 가운데 제일 키 작은 중뜸 점백이 용둔리에서는 귀한 박씨라 박점백이 밥 안쳤다 하면 금방 밥 퍼내고 물 길었다 하면 금방 부엌 물항아리 넘친다 난장이 면했는데 당차기는 으뜸이다 잿정지밭에 넘어가 고추 끝물 따다가 선제리 남정네 달려들어도 눈썹 하나 까딱 않고 그 한적한 밭에서 아서 여자 한 품으면 당신 같은 집 3대 절뚝발이 생겨나 나 그 꼴 못 보아주어 하고 물리친다 실로 할미산 아래 그럴듯한 정기 타고난 처자로고 시집가 사내 하나 잘도 다듬어 놓을 처자로고
-5권, 「점백이」 전문-
㈑갈뫼 딸그마니네 집 딸 셋 낳고 덕순이 복순이 길순이 셋 낳고 이번에도 숯덩이만 달린 딸이라 이놈 이름은 딸그마니가 되었구나 딸그마니 아버지 홧술 먹고 와서 딸만 낳는 년 내 쫒아야 한다고 산후조리도 못한 마누라 머리 끄덩이 휘어잡고 나가다가 삭은 울바자 다 쓰러뜨리고 나서야 엉엉엉 우는구나 장관이구나 그러나 딸그마니네 집 고추장맛 하나 어찌 그리 기막히게 단지 남원 순창에서도 고추장 담는 법 배우러 온다지 그 집 알뜰살뜰 장독대 고추장독 뚜껑에 늦가을 채우던 고추잠자리 그 중의 두서너 마리 따로 와서 앉아 있네 그 집 고추장은 고추잠자리하고 딸그마니 어머니하고 함께 담는다고 동네 아낙들 물 길러 와서 입맛 다시며 주고 받네 그러던 어느 날 뒤안 대밭으로 순철이 어머니 몰래 들어가 그 집 고추장 한 대접 떠가다가 목물하는 그 집 딸 덕순이 육덕에 탄복하여 아니고 순철아 너 동네장가로 덕순이 데려다 살아라 세상에는 그런 흐벅진 년 처음 보았구나
1권, 「딸그마니네 집」 전문-
인용시 (다)에서, 시인은 시골 아낙 점백이의 당차고 야무진 심성을 희화적 서정으로 그리고 있다. 전반부에 드러나는 사실로 보아,

<용문리>에 박씨 성을 가진 처자 <점백>이는 겨우 난쟁이 면한 작은 키로 못난 인물임을 알겠다. 그러나 언제나 부엌일이다 밭일이다 고된 살림을 꾸리는 억척스러움은 동네에서 인정받고 있는 듯 하다. 밭일 가운데 고추를 따서 말리는 일이 있는 모양인데, 짓궂은 남정네가 작은 키의 만만함을 기화로 농간을 걸어오면 물리치는 솜씨가 <당신 같은 집 3대 절뚝발이 생겨나>와 같이 지혜롭다. 또 그 정조가 할미산의 정기를 받았다는 상상력은 더욱 의미 심장한 설정이다.. 시인은 이를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고된 일상에 찌들어 살아가지만 한 집안 잘 꾸려나가는 처자로 마무리됨이 넉넉한 온정을 잘 말해준다. 이는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어려운 세간에도 부지런히 살아가며 세파를 견디어내는 아낙의 모습이 맵짠 <끝물 고추밭> 풍경과 겹쳐 그려지는 것이 또한 흥미롭다. 맵기로 치자면 끝물 고추 따를 것이 없을 텐데, 이런 특성이 점백이의 당찬 성격과 결부되어 <사내 하나 잘 다듬어 놓을 처자>로 귀결되고 있다. 거기다가 점백이에게 혼쭐난 사내의 뒷꽁무니를 떠올리라치면 이 또한 얼마나 정겨운가.(라)의 경우 역시 고난이 풍자와 해학의 멋으로 환치됨을 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해 불화스러운 <딸그마니네 집> 풍경을 그리다가 13행의 <그러나>로 전환되는, 후반부는 유난히 고추장맛이 좋은 집안 풍경을 교차 삽입시키면서 시 전체를 온화한 해학적 분위기로 전환시킨다. 거기다 늦가을의 고추잠자리와 함께 담근다는 동화적 내용도 재미있으려니와 말미에 목물하던 덕순이의 흐벅진 육덕을 보여주는 대목은 시인의 이야기꾼으로서 탁월하고도 넉넉한 구성 감각을 보여주는데, 이는 인간애의 발로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통스런 삶과 생활을 그릴 때에도 시인은 이야기 속의 인물을 고통 속으로 빠뜨리지 않고 결국 긍정적인 밝음의 정서로 환치할 줄 아는 여유를 가졌다. 묘사되는 상황이 참담하고 비극적인 경우라도 시인의 어조가 분노로 격앙되거나 절망으로 좌절하는 경박함은 없愎?. <흐벅진 년> 같은 육감 나는 어투는 오히려 정겹다. 이러한 사실은 민중의 삶이 지니는 항구적인 생명력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런 이웃들과 함께 삶의 뿌리를 내리며 공동 체험을 한 시인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여기서 분명히 이전의 시에서 느껴지던 다소 과장되고 격앙된 목소리가 사라지고 그 대신 넉넉한 절제미와 지난한 삶의 통로를 거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자유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역사 속에 되살아나는 이름과 희석되는 이름 민중의 삶을 다양하고 실감나게 그려내다 보면 긍정적인 인물뿐 아니라 부정적인 인물도 등장하게 마련이다. 생활에 찌들어 더 없이 거칠어진 성격을 가진 사람이나 욕설을 일삼는 심술궂은 아낙네, 역사의 뒤안길에서 기회주의자로 입신하여 이웃들에게 가중의 고통을 안기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만인보』에 등장하는 인물을 의식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순박한 반면 어리석은 경우도 있으며 때론 답답하고 이기적이고 즉흥적인 일차원적 성격으로 규정되어지는 인물이 있음을 본다. 시인은 전자와 같은 민중의 모습들을 결코 순수하다는 식의 미사여구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시인은 민중을 시라는 문학적 장치의 도구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더불어 사는 생래적 인간의 모습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한 배를 저어 너른 바다에로 나아가는 동질성의 민족애를 함께 느끼는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민중의 모습과 한계를 그대로 묘사하고 인정하는데 시의 방법적 운용을 보이고 있다. 민중의 이처럼 가난하고 무지하며, 이기적이고 즉흥적인 책임의 상당부분이 사회.정치적 당대의 현실과 맞물려 있음을 깊이 꿰뚫고 있는 시인의 혜안에서 이는 가능하다.
㈒개성 구두쇠는 오줌 팔 때 오줌에 물을 타는데 해주 구두쇠는 그 오줌 살 때 손가락으로 오줌 찍어 맛보고 물 탔나 안 탔나 보고 사간다는 것이렷다. 이런 구두쇠 여러분에 의해 조선 상업이 이루어져 왔나니 그 구두쇠 온데간데 없더니 나라 기우는 것이렷다 암 그렇고말고 구두쇠도 정기여 민족정기여
-2권, 「상구두쇠」 부분-
㈓그가 태어난 고장 선산 도리사 밑 밭두렁에는 캐내지 못한 바위가 박혀 혼자 거무튀튀하다 그 바위 닮아야 했던가 여름 햇볕이 쨍! 그는 그렇게 고독했다
일본 육군의 모범장교였다가 육군 소장이었다가 쿠테타 이래
녹슨 쇳소리 그의 목소리의 파쇼는 바윗덩어리였다 탄압과 건설이 행여 뒤질세라
모든 곡선들은 거듭된 5개년 계획과 함께 새마을 슬레이트지붕 고속도로의 직선으로 교체되었다 남부동해안 울산공업단지 포항제철 그가 태어난 고장도 공장의 도시로 교체되었다 1970년 초 서울에는 쉬쉬쉬 소문이 떠돌았다 박정희 육영수는 총 맞아 죽을 운명이라는 것
어느덧 춘궁기 보릿고개가 사라졌고 전란 이후 휴전선 이남의 산야는 개발의 나라 선장의 나라였다 그런 어느날 쉬쉬쉬 소문이 떠돌았다 감옥 지붕의 비둘기들이 우르르 날아오르면
-11권, 「박정희」 전문-
우리의 삶 속에는 다양한 군상이 어우러지며 살아갈진대 밝음과 어둠의 대비와 마찬가지

로 부정적인 인물과 긍정적인 인물이 있음은 앞서 언급했던 바이다. (마)의 경우, 늘상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온 구두쇠를 그려내면서 이들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긍정의 품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구두쇠.../구두쇠도 민족 정기여>라는 대목에서 시인의 인식이 민중에 대한 깊고도 폭 넓은 애정으로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제 금융의 시대를 헐떡이는 오늘에 더 각별히 다가오는 음성적 거래가 없는 <상업>의 의미가 새삼 새롭다. (바)에서는, 평생을 <파쇼>와 <개발>이라는 바위같은 신념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그럼에도 역사의 뒤안길에서는 희비가 엇갈리는 인물 <박정희>를 그리고 있다. <개발의 나라, 성장의 나라>를 <쿠테타>처럼 일구고 어느날 <소문>처럼 사라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박정희>를 그리고 있는 것이 인용시 (바)의 외연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보자. 1연의 <그렇게 고독했다>, 3연의 <행여 뒤질세라>, 4연의 <그가 태어난 고장도 공장의 도시로 교체되었다>, 5연의 <개발의 나라>가 함의하는 메타포는 역사 속에서 <박정희>가 진정 어떻게 평가되어지는가를 사실보다 더 쉽게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외연에 대한 내연이다. 문법상으로는 그저 역사적 사실만을 서술하듯 보이지만 행간의 메타포는 일국의 통치자였던 <박정희>의 그릇된 통치 신념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편협하게 드러날 수 있는 시선을 초월하여 개인의 고독한 삶까지를 바라보는 대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시인은 이런 민중들의 다양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의 원천으로 파악하였거니와 이런 힘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에 편입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싫든 좋든 우리의 역사로서 말이다. 그런 인정의 발판 위에 우리가 서 있기에 이는 마땅한 일이다. 개개의 모습은 장구한 역사의 흐름을 놓고 볼 때 실개천에 불과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옳고 그름을 떠난 작은 줄기가 모여 반도땅 산천에 푸른 잎 돋게 하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꽃바람 일으키는, 마침내 열매 맺는 생명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자연발생적 믿음인 것이다. 이것이 시인이 말하는 바 역사적인 <공공성>이려니와 <하잘 것 없는 만남에도 거기에는 역사의 불가결성이 있다>는 인식에 토대를 둔 발현의 다름 아니다. 이밖에도 이름도 없이 명멸해간 우리의 친근한 이웃들, 한결같이 가난한 시절을 살다간 사람들을 운명적인 현실로서 삶을 견디는 의연한 실존으로 이해하고 있는 태도는 계속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민중들을 고통 속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에 몸부림치는 인물들로서만이 아니라 그러한 욕망의 헛됨을 수락하고 하늘의 뜻,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들로 그려내고 있다. 날카롭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시선들은 이런 시인의 자세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며 음미할수록 선승의 어록을 연상케 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잠시 사담을 곁들이자면, 한때 출가하여 일초선사의 시절을 지낸 시인에게 부처란 다름 아닌 가난과 고통 속을 의연히 헤쳐 나간 민중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하여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다. 깨달음의 과정은 삶의 지혜와 통찰을 얻게 되는 고행의 과정이며, 고행의 극복은 표층적인 삶에서 누릴 수 없는 깊은 맛을 준다. 그것은 활자화된 글일 수도 있겠고, 나뒹구는 돌과 무심한 구름같은 자연에 의한 것일 수도,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일 수도, 주위의 매일 스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상처나 사건을 계기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방법에 따르든 깨달음의 순간에 이르게 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 중의 하나가 바로 이와 같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순간을 제시해주는 것응淡? 공자이래 선인들의 입가에 회자되는 가르침이 지금에도 유효한 까닭, 바로미터다.삶이란 도정에는 많은 형태의 절망과 그 절망을 주춧돌로 딛고 선 희망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선과 악, 미와 추, 기쁨과 슬픔, 생과 죽음, 성과 속이 어우러져 흘러가는 것이 삶이며 역사의 줄기이다. 때로는 거센 풍랑으로, 때로는 무심한 표정으로 얼어붙은 수면과도 같은 우리의 삶이 강이나 바다에 비유되는 것은 상대적 현실 속에 절대적인 그 무엇의 존재, 즉 희망의 존재를 반드시 믿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물줄기가 지금도 끊이질 않고 도도한 흐름을 계속하는 것은, 어둡고 부정적인 요인들보다는 의롭고 따사로운 긍정적인 요인들이 아직은 보다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삶의 연속이 우리의 공동체적 삶에 나름대로의 의미망을 형성하며 면면히 그 전통의 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핵가족화된 사회구조와 물질문명 속에서 각박한 삶을 사느라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질박한 소리가 암담하고도 황량한 현실 속에서 부대끼며 먼저 살다간 이들의 삶의 정수를 받아 우리의 따뜻한 인간애와 오늘로 이어지는 정체성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은, 가치 부재의 혼란을 사는 요즘의 고향이 따로 없는 세대들에게도 위안이 되어주는 고향의 언덕이 될 것이다.
㈔사육신에 대고 생육신이라고? 좀 장난스런 이름이야 좀 구차스런 이름이야 그 생육신 중의 하나 매월당이라고? 하여간 살아있어 반가우이
중도 아니고 속도 아니라고 비승비속도 아니라고 신선도 신선 아닌 것도 아니라고 반가우이
홍산 무량산에 가고 경주 남산에 가도 그 어디 평지 아니거든 좀 으슥한 곳마다 벼랑 아래마다 거기 매월당이라고
젖내나는 시절부터 시 지어 왕도 놀라 불러들이니 그 시의 재주 하나로 살아남아 이 산 저 산 떠돌며 시 짓고 그 시 내버렸구나 반가우이
왕조시대 겨우 여기까지 시인이었구나 사육신으로도 안되는 터에 생육신으로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그것으로도 사는 까닭은 왜 아니겠는가
그 재주 왜 백성과 더불어 노닐 수 없었던가 만백성 까막눈과 노닐어 그 까막눈에 시 바치지 못하고 말았던가 그것만은 반갑지 않으이 대시인 매월당 김선생 시습이여
-6권, 「김시습」 전문-
㈕오촌 종식이 마누라를 어머니는 사랑재 사람이라 부른다 사랑재에서 시집와서 사랑재 사람이라 부른다 사랑재 사람 하면 우리 동네가 사랑재 마을이 된다 관여산 사람 하면 우리 동네가 관여산이 된다 월하산 사람 하면 우리 동네가 회현면 만경강 기슭 월하산이 된다 우리 동네는 참 많은 동네에서 와서 이루고 있다 사랑재 사람 죽 끓듯 하는 변덕 모르고 앞치마 하나 없이 팍 가난해서 지붕도 잇지 못한 그 집에 해마다 제비 와서 새끼 두 배나 쳐 나가니 어허 사랑재로고 사랑재로고
-3권, 「사랑재 사람」 전문-
역사 속에 살아있는, 그러나 민중 속에는 죽어 있었던 선비 시인 「김시습」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울려 사는 공동체적 삶의 정겨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시대의 불행을 한없이 안타까워하는 민중과 만나게 된다. 인용시 (사)의 <사육신으로도 안 되는 터에/ 생육신으로 무엇이겠는가>라는 시문을 주목해 보자. 까막눈인 백성은 여섯 신하가 죽고 여섯 신하가 살아남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당대의 풍랑이 거칠기만 한데, 천재적 필력으로 왕마저 놀라게 한 시인 매월당은 <이 산 저 산 떠돌며 시 짓고/ 그 시 내버렸>던 생활로 자위적인 생육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연의 <반갑지 않으이>는 그릇된 시인됨을 아쉬워하는 마음인 것이다. 또한 늘상 이원론적으로만 인식되어온 <생육신>과 <사육신>을 그리면서 죽어간 자의 명예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안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굵은 종적으로 남은 인물을 기왕의 해석과는 달리 민중의 입장에서 재해석해고 있다. 민중과의 다른 놀이판에서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계급사회 지식인의 그릇된 가치를 과감하게 힐난하고 있다. 다음의 시 (아)를 보자. 앞서의 인용시 (사)와는 모든 면에서 다소 대조적이다. 여기저기 모인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화목하게 사는 모습을 <사랑재>라는 의미화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렇다. <앞치마 하나 없이> 가난하고, 지붕도 제대로 얹지 못한 채 살고는 있지만 <해마다 제비가 와서 새끼 두 배나 쳐 나가니> 이 또한 살만한 곳, <사랑재> 아니겠느냐는 어루어 사는 삶의 미덕을 노래하고 있다.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며 살던 옛 전통이 사라져 이웃끼리 어우러지는 삶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정조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옛모습 조차 하나 둘 사라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고 서구화된 삶의 양식 따라 살고는 있지만 이처럼 소박하게 더불어 살던 우리의 옛모습을 보는 일은 전통의 향기와 맞물려 우리를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렇게 정겹게 더불어 사는 모습과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끈끈한 인간적 유대감은 민족 정서의 근원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극히 열린 마음이란, 열린 지성이란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근대에서 현대에로 유전되는 절망과 희망의 삶들세계화, 문명화라는 미명 하에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다. 근대성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서 빚어지는 혼란, 현대성의 얄팍한 밀레니엄 버그가 소리 없이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갉아먹는 불안의 시대에 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테크놀리지에 의해 언제 세상의 모든 것이 혼잡 일로에로 치달릴지 모를 불안을 함께 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행복일까? 폭력과 파괴와 배반과 음모가 도처에 도사리고 이기심과 미움이, 무질서가 가득해 인간 본연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체취가 희미해지는 것을 보면 고개는 가로 저어진다. 과거는 현재와 단절되고 미래 또한 불투명한 실정 속에서 세상은 점점 인간의 원형적 심상마저 탈바꿈하기를 재촉한다. 유전자의 복제가 획기적 과학의 쾌거라지 않던가. 외견상으로는 반듯한 도시의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처럼 모두 그럴듯해 보인다. 역사 청산이 이루어져 가고 자본의 필마를 타고 세계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하루를 25시간으로 사는 근대성 떨지 못한 현대인. 그럼에도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안의 기미를 감추지 못해 삶의 지표 없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 그들의 후회하는 미명 소리가 안타까이 들린다.
㈖그의 죽음은 너의 시작이었다 나의 시작이었다 하나 둘 모여들어 희뿌옇게 아침 바다의 시작이었다
그는 한밤중에도 우리들의 시작이었다
-10권, 「전태일」 전문-
㈗어쩌란 말이냐 술은 취하고 독재는 끄덕 없는데 장님 가수 이용복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텔레비젼에는 자꾸만 박정희만 나오는데
어쩌란 말이냐 어린 시절 세상 본 기억뿐 그 뒤 눈 멀어
기타 익히며 손끝에서 피 흘렀는데 박정ㅘ晝? 나오고 장님 가수는 나오지 않는데 재수 없다고 나오지 않는데
渚섬? 말이냐
-15권, 「장님 가수 이용복」 전문-
우선적으로 (자) 텍스트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만 보자. <그의 죽음>으로 <나>와 <너>의 <시작>이 있었고, 그것은 <우리들의 시작>으로 다시 귀결된다는 뫼비우스 띠같은 구조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겠다. 여기까지만 시를 본다면 절반의 실패보다 못하다. 시제로 걸린 「전태일」은 청계천변 피복 공장의 한 노동자로 죽어간 개인적 운명 이상의 사회적 함의를 지닌다. 이 시의 출발은 여기에서 비롯되고 여기에서 <시작>의 의미가 다시 생성되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해보자. 우리의 우울했던 근대화 과정의 역사 속에서 작은 외침으로만 그치지 않았던, 시대의식의 전환의 때를 알리는 <시작>의 의미임을 아우르는 <그의 죽음>을 그제야 확인 할 수 있겠다. 한 <죽음>을 보고서야 시작하는 <나> <너> <우리>의 억눌렸던 자아의 발견, 그리고 시작하는 <시작>. 하여 외견상 <죽음>과 <시작>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살아난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놓인 요단강만큼이나 시원한 거리다. 그러나 어떤 한 죽음은 또 다른 무수한 <나> <너> <우리>의 새로운 인식의 출발이고, 그야말로 노동자의 새벽을 열어놓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의 죽음>이 끝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들의 시작>으로 맞물려 살아나는 것이다. 어떤 시작을 몰랐을 때 그것은 정체되어 있음이

고 죽음은 가치를 상실하고, 말 그대로 종말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시작>이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응전의 자세인 셈이다. 인용시 (차)를 보자. 시인의 시선은 앞 못보는 심정을 애절하게 노래하는 장님 가수에게로 옮겨간다. 우리 근대사의 잔혹성은 이를 데 그지없는 부분이다. 굳이 사례를 찾아 국회도서관을 들락거릴 일도 없다. 고개를 돌려 우리 주변을 보라. 헌법에 명시되어있는 집회의 자유가 <위장 결혼식으로(13권, 「윤정민」)>만 가능했던 시절. 지미 카터가 방문한다고, 헨리 키신저가 온다고 <거지란 거지 다 잡아다가 녹번동 수용소에 가둬(15권, 「거지 없는 날」)>버리는 정책이 우리 근대의 복지였다. 말조차 될 수 없는 이유로 <어린 시절 세상 본 기억뿐>인, 노래가 전부인 장님에게마저 권력은 혹독하였으니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말이냐! "말 할 수 없을 때는 침묵해야 한다"는 감성과 이성의 난간 위에서 자의식으로 점철된 삶을 살던 자의 한 마디가 군부통치의 철학이었을까? 어느날 사람은, 신이 천지창조 마지막날 심열을 기울여 창조한 수려한 용모를 상실하고 역사의 입체적 거울에 비춰오는 그로테스크한 스스로의 모습에 놀랄 것이다. 왜 이런 예감이 드는 것일까. 인간이 인간을 우롱하는 죄악이 용솟음 치고 인간 심연의 결과 그 결의 축적인 문화마저 위기적 위선과 이기심으로 기승하려는 우려가 다분하기에 그렇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아직은 희망이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일의 태양은 솟아오른다. 나볏이 부채살 펴는 햇살 부시운 호숫가에 무지개 피워 물고 안개를 걷어올리며 태양은 반드시 솟는다. 우리는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무지개 다리 밑 호수 거울에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 볼일이다. 그리하여 씻어낸 맑은 정신으로, 여태까지 겉돌고 삐걱이는 역사의 수레바퀴 틈에 걸려있는 돌멩이를 뽑아 낼 일이다. 현상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는 한 푼의 값어치도 메겨주지 않는 우리의 눈을 맑게 씻을 일이다. 바슐라르는 「몽상의 시학」에서 꽃을 보면 그 뿌리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피고 지는 생리가 꽃과 다를 바 없는 인간, 우리에게 울림 있는 금언이다. 이쯤에서 쉼표를 찍고 뒤를 돌아다보아야 할 것이다. 걸어왔던 길 살피는 일은 정체가 아니고 반추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허섭한 것인가를 골라내야 하는 회개의 때이다. 사막같은 세상을 떠돌면서 참 존재의 참 가치와 참 의미를 되살려, 되새기며 황폐 일보 직전의 가슴밭에 내일의 씨앗이 움트기를 바란다면 이제는 보습날 세워 그 밭을 갈아 놓아야 한다. 그 첫번째 것으로 잃어버린 고향을 되살려 우리의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원초적 공간을 가꾸어놓는 일이다. 철마다 물오르고 씨내리는 상큼 한 들풀 내음이 지친 심신을 달래어주는 고향 언덕을 황소걸음으로 거닐며 질박한 고향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우리 사는 세상을, 역사를 일구어온 생명력의 실체가 바로 그들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오늘을 사는 많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다급한 일이다. 또한 우리의 진솔한 모습을 담은 삶의 모습이 시대정신이라는 변증법적 여과작용을 거쳐 다가올 내일의 역사 속으로 투영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 역시 내일을 희망으로 맞이할 으뜸의 방법이다.
고단한 역사를 지키며 삶의 저력을 과시해온 민중의 참 모습이상으로 고은의 집념 어린 전작시편 『만인보』에 대해 살펴보았다. 미완의 작품을 논하는데 상당한 까다로움이 있었음을 밝히며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일삼아야 하는 인물들에 대한 방대하고 풍성한 시적 형상의 집결로써 『만인보』를 논한다는 것이 애당초 무리는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시작이 반이라는 흔한 말에 기대어 반은 보았으니 완결을 보일, <만인에 대한 시적 기록> 『만인보』는 우리 문학사상 중요한 자리 매김을 할 것이다. 산업화부터 민주화까지 다시 세계화와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민족애에 대한 의지로 지난 역사를 일군 보습날에 수 없이 명멸해간 묘비명 하나 남지 않은 이웃들의 모습을 되살려낸 시적 작업만 두고도 그 평가는 미루어 짐작컨대, 보배임에 틀림없다.시인은『만인보』의 작업을 통해 고단한 역사를 지키며 삶의 저력을 과시해온 민중의 참 모습을 찾아내고 있으며 그로써 민족적 생명력의 유구한 실체를 파악해내고 있다. 가난하고 고통스런 삶을 일관하면서도 넉넉하고 겸허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을 해방된 시각으로 그려내어 민족적 삶의 지형도를 그리고자 하였다. 가파른 역사의 격랑에 떠밀리며 침몰하면서도 민초로서의 강인한 근력을 지탱해온, 민족 고유의 삶 자리를 지켜낸 주인공들에게 이름자리를 찾아주었다. 이들의 다양한 삶이 민족적 삶의 총체성으로 연결되어 있음에 주시한 『만인보』의 시편들은 이념을 초월하여, 역사 속으로 흘러 들어가 우리의 현재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우리의 미래로 끊이지 않는 흐름을 계속 할 것이다. 강물이 물밑으로 흘러 마침내 바다에 다다르듯 말이다. 아울러 『만인보』의 풍요롭고 다양한 시적 성취는 공동체로서 인식될 수 있는 민족의 유기성에 대한 믿음의 재인식이며 이런 믿음은 민족의 참된 나아갈 길 밝히는 불빛이기를 소망하는 시인의 열정과 맞물려 있다. 한편의 시는 인간과 더불어 그 자체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며 우주다. 『만인보』의 서사와 인물들 또한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구축卍ぐ「? 민족 전체의 삶과 연결되어질 것을 벌써 잉태의 배냇짓 심상찮은 시인의 가슴속 시아(詩芽)들에게도 당부한다.
[원고분량=200×115]
※본 원고는 석사 논문집에 수록된 문학평론 가운데 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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